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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조업 르네상스인가, 고립주의 환상인가?― 리쇼어링 정책의 진실

by hororo 2025. 4. 13.

    목차

리쇼어링은 말 그대로 해외로 이전했던 제조업 공장을 자국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정책이다. 미국에서는 특히 팬데믹 이후 공급망의이 문제로 대두되며, 리쇼어링이 국가 안보와 경제 회복의 핵심 전략으로 부상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 이후 이를 보다 구조적으로 추진했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산업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쏟아붓고 있으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CHIPS and Science Act 등도 이 리쇼어링 기조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 결과, 실제로도 TSMC, 인텔,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에 나서며, 미국 제조업의 르네상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오하이오, 애리조나, 텍사스 등지에서는 수십 년 만에 제조 기반 투자가 다시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하지만 과연 이 현상이 지속 가능하고 체계적인 르네상스인가, 아니면 단기적 정책 효과에 불과한 환상인가? 이 질문이 바로 지금 우리가 짚어야 할 핵심이다.

리쇼어링 정책의 진실
리쇼어링 정책의 진실

1.숫자로 본 리쇼어링의 현실, 기대 vs 실상

리쇼어링은 정책 슬로건으로는 매력적이지만, 현실 속 데이터는 다소 복합적이다.
미국 리쇼어링 이니셔티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미국에서 발표된 리쇼어링 및 FDI(외국인직접투자) 제조업 일자리는 35만 개 이상이었다. 이는 역대 최대 수치다. 하지만 전체 제조업 고용 비중(약 8.3%)으로 보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또한 많은 리쇼어링 사례는 완전한 복귀라기보다 부분적 분산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 있던 생산기지의 일부만 미국으로 옮기고, 나머지는 베트남·멕시코 등 저비용 국가로 이전하는 식이다. 즉, 단순히 공급망 재배치이지, 반드시 미국 중심 회귀는 아니다.

그리고 기업들은 리쇼어링을 할 때 높은 임금, 인프라 부족, 규제 장벽 등의 현실적 문제에 직면한다. 예를 들어, 애리조나의 반도체 공장 건설은 숙련 기술자 부족 문제로 수차례 지연되었고,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도 고비용 구조로 인해 채산성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요소들은 리쇼어링이 정책 드라이브만으로는 완전한 제조업 부활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2.고립주의의 역습, 미국 중심 공급망의 한계

리쇼어링은 공급망의 안정성과 자국민 고용 창출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이 과정에서 고립주의적 요소가 강화되고 있다. 특히 IRA와 CHIPS법은 미국 내 생산을 조건으로 보조금 지급을 제한하거나, 특정 국가(예: 중국, 한국)의 참여를 제약하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아메리카 퍼스트식 접근은 동맹국과의 신뢰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IRA가 자국 기업에 불공정하다고 항의했고, 한국 역시 전기차 세액공제 조건에서 배제되어 논란이 됐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이 본질적으로 상호의존적 구조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나친 국산화 요구는 비효율성과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예컨대, 반도체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십 개국의 장비와 원재료가 필요한데, 이를 모두 미국 내에서 조달하겠다는 생각은 현실성이 낮다.

이러한 움직임은 과거 대공황 시기의 스무트-홀리 관세법(1930)을 떠올리게 한다. 보호무역주의의 강화를 통해 자국을 보호하려 했지만, 결과는 세계 무역 위축과 경기 침체였다. 리쇼어링 역시 미국 중심 공급망 구축이 경제적 고립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우려를 낳고 있다.

 

3. 선택과 집중 vs 맹목적 회귀

그렇다면 미국 제조업이 진정으로 르네상스를 맞으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우선 리쇼어링은 모든 산업의 귀환이 아니라, 전략 산업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어야 한다. 반도체, 바이오, 전기차 배터리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분야는 리쇼어링의 정당성이 충분하지만, 저부가가치 소비재까지 무리하게 옮기려 하는 것은 비용 대비 효율이 낮다.

둘째, 인재와 기술 기반이 병행되어야 한다. 단순히 공장을 짓는다고 제조업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생산기술, 엔지니어링, 공급망 관리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교육·훈련 시스템 강화가 필수적이다.

셋째, 정치적 일관성도 중요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리쇼어링 정책의 방향이 흔들리면, 기업들은 미국 투자를 망설이게 된다. 장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정책이 리쇼어링의 신뢰 기반이 되어야 한다.

 

결국 리쇼어링은 단순한 ‘돌아오기’가 아니라, 미국이 글로벌 생산 체계에서 어떤 위치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다. 모든 걸 자국 내에서하겠다는 고립주의는 지속 불가능하고, 글로벌 파트너십과 기술 혁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산업 생태계 조성이 진짜 제조업 르네상스의 조건이다.


리쇼어링은 단지 생산의 물리적 위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국가 경제의 철학과 전략을 다시 묻는 일이다. 미국이 마주한 갈림길은 단순하다.
제조업 부활이라는 기회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고립주의라는 환상 속에서 비용만 떠안을 것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공장이 아니라, 더 스마트한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