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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 동북아 안보 환경은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르고 복합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가장 뚜렷한 위협은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다. 북한은 이미 전술핵무기를 체계적으로 전력화하고 있으며, 초대형 방사포, 극초음속 미사일, 다탄두 ICBM 실험 등 기존의 억제체계를 무력화하는 신형 무기 체계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특히 2023년 이후 북한이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정황은, 단순한 위협을 넘어 전술적 유사시 전개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고려하게 만들고 있다.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 갈등
이와 함께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 갈등 역시 지역 전체 안보질서를 흔들고 있다. 중국은 시진핑 체제 이후 대만 무력통일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해 미국과 일본, 필리핀은 인도·태평양에서의 연합 전력 배치와 실전 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문제는 이 모든 군사 충돌의 교차점에 대한민국이 전략적 요충지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동시다발적인 안보 위기가 현실화된다면, 한반도는 더 이상 ‘국지적 대응’이 아닌 복합 위기 대비의 최전선이 된다.
이러한 안보 현실은 국방정책의 방향을 기존 전력 보강에서 비상시 동시다발 대응으로 바꾸고 있다. 단기적 외부 조달보다는 내수 방위산업 생태계의 탄탄한 기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해졌고, 이는 곧 국내 방산산업의 전략적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맞춤형 작전 대응 능력을 갖춘 다층적 공급망 체계로 진화
전통적으로 한국의 방산산업은 군의 요구에 따라 특정 무기 체계를 납품하는 공급자 중심 구조를 띠어왔다. 이는 단일 구매자 의존도가 높고, 기술 혁신보다는 수주 경쟁이 핵심인 시장 구조를 형성했다. 그러나 안보 리스크가 상시화되면서 이러한 구조는 명백한 한계에 직면하게 됐다. 위기 상황 시 얼마나 빠르고 유연하게 공급망을 대응할 수 있는가가 경쟁력의 척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군은 지속적 생산, 모듈형 플랫폼, 민군 협력 기술개발 등의 요소를 강화하며, 방산산업의 내수 체계를 보다 유연하고 민첩한 구조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K9 자주포, 현궁 미사일 등 기존 수출 중심 무기 체계도 국내 신속 대량배치 체계로 전환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에 적합한 중소·중견 방산기업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또한, 사이버전·무인기·전자전 등 비대칭 전력 분야에 대한 내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기존 육군 중심의 장비 수요를 넘어, 공군·해군·정보사령부 등 다양한 작전환경에 맞춘 기술 개발과 배치가 병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결국 방산 내수시장도 더 이상 일률적인 장비 구매 구조가 아닌, 맞춤형 작전 대응 능력을 갖춘 다층적 공급망 체계로 진화하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 로봇공학, 양자기술 등 첨단민간기술의 접목이 방산 내수의 새로운 성장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와 민간 스타트업 간 협업 확대, 국방 AI 데이터셋 개방 등은 민간 기술의 전장 적용 가능성을 가속화시키고 있으며, 이 역시 내수 방산의 판도를 흔들 수 있는 잠재 요소다.
내수 방산의 강화는 곧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의 신뢰성 확보
국내 방산산업의 내수 중심 구조 재편은 단지 기업들의 매출 변화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국가 안보체계와 산업정책이 중첩되는 지점이며, 향후 수출 경쟁력 확보의 기반이기도 하다. 즉, 내수 방산의 강화는 곧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의 신뢰성 확보로 이어진다. 예컨대 K2 전차나 KAI의 FA-50 등은 본래 한국군에서의 실전 운용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외 수출 성공으로 이어진 바 있다. 따라서 내수시장의 고도화는 수출 기반 확장의 선순환 고리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 변화는 동시에 방산업계에 다음과 같은 대응 과제를 던진다.
첫째, 공급망 리스크 관리와 자립화다. 반도체, 정밀전자, 드론 부품 등 일부 핵심 부품은 여전히 해외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며, 이는 유사시 공급 차질을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산업계는 부품 국산화율 제고와 함께 다변화된 소싱 전략, 위기 시 조달 우선순위 체계 등을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둘째, 인력 문제도 점점 심화되고 있다. 방산 기술은 고도의 숙련과 보안이 필요한 분야지만, 젊은 기술인력 유입은 정체 상태다. 기존 대기업 중심의 폐쇄적 생태계는 기술의 확산과 혁신을 가로막는 구조이기도 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방형 기술플랫폼, 학계-군-기업 간 교차 협력 모델 등이 필요하다.
셋째, 예산의 일관성과 전략성이다. 국내 방위비는 증가 추세지만, 연도별 예산편성은 여전히 정치적 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따라서 방산업계가 장기적 R&D를 추진하고, 생산시설을 선제적으로 확충할 수 있으려면 중장기 방산계획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 확보가 관건이다.
북핵과 대만해협이라는 이중 리스크는 한국 안보에 전례 없는 복합 위협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내수 방산산업의 재편은 단순한 국방산업 정책이 아닌, 국가 생존 전략의 핵심 축이 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내 방산업계는 기존의 수출 지향 모델에서 벗어나 위기 대응형 자립 체계로 전환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이 군사 강소국에서 안보 산업 자립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인 만큼, 이 변화의 흐름을 정밀하게 읽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적 사고가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