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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가계의 팬데믹 저축 고갈과 소비 둔화

by hororo 2025. 5. 6.

    목차

코로나19 팬데믹은 미국 경제에 초유의 충격과 동시에 전례 없는 저축 버블을 만들어냈다. 2020년과 2021년 동안 미국 정부는 총 5조 달러에 이르는 재정 지출을 통해 가계에 직접적인 현금 지원을 제공했고, 이와 함께 외출 제한 및 소비 위축이 맞물리며 순저축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다. 미국 연준에 따르면, 팬데믹 시기 중 미국 가계가 축적한 초과 저축 규모는 최대 2.1조 달러에 달했다.

미국 가계의 팬데믹 저축 고갈과 소비 둔화
미국 가계의 팬데믹 저축 고갈과 소비 둔화

가계의 소비 여력 위축으로 이어진 저축 고갈 현상

이러한 과잉저축은 2021~2022년 미국 경기 회복의 강력한 연료로 작용했다. 공급 병목과 물류 대란으로 인한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는 이를 감내하며 지출을 유지했고, 결과적으로 미국 경제는 예상보다 빠르고 강하게 반등했다. 그러나 이비정상적 소비 회복은 결국 임시적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 2024년 하반기부터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2023년 말부터 시작된 저축 고갈 현상은 점차 가계의 소비 여력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 주요 투자은행들은 팬데믹 시기 축적된 초과 저축이 2024년 중반을 기점으로 대부분 소진되었다고 분석한다. 특히 저소득층과 청년층에서 소득 대비 지출 비율이 팬데믹 이전보다 높은 수준으로 돌아가면서, 이들의 소비 여력 한계선에 도달한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고금리, 높은 물가, 학자금 상환 재개 등 구조적 부담과 맞물려, 소비 둔화의 선행지표로 해석되고 있다.

 

중산층의 실질 구매력 약화와 수요 사이드 리스크

저축 고갈이 단기적인 지출 감소에 그친다면, 경기순환적 요인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 소비 위축이 더욱 우려되는 이유는, 그것이 점점 구조적 문제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중산층의 실질 구매력이 약화되면서 소비의 엔진이 점차 둔화되고 있다.

 

미국 가계는 높은 인플레이션의 여파로 실질임금 상승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인해 주택담보대출 이자와 신용카드 이자율은 역사적 고점에 가까워졌고, 이는 중산층 소비자의 순이자부담을 빠르게 증가시켰다. 2024년 말 기준, 미국 소비자의 신용카드 평균 연체 이자율은 20%를 상회하며, 일부 가계의 재무 건전성에 심각한 경고등이 켜졌다.

 

또한 학자금 대출 상환 유예가 종료되면서, 수천만 명의 청년 가계에 월 수백 달러의 추가 부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여력은 빠르게 위축되고 있으며, 이들은 고용 불확실성과 자산 가격 변동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계층이다. 실제로 최근 몇 분기 동안 백화점·의류·외식 등 재량 소비 분야의 매출이 하락세로 전환되었고, 할인형 소비나 중고 시장 수요가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는 이러한 소비 압박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소비 위축은 결국 기업 실적 악화 → 고용 축소 → 소비 추가 둔화라는 부정적 피드백 루프를 형성할 수 있다. 특히 미국 경제가 수출보다는 내수 소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요 사이드 리스크는 단기 경기 하강을 넘어 중기적 성장을 제약할 수 있는 중대한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소비 둔화 리스크 속 투자자와 정책당국의 투자 전략과 정책 방향

그렇다면 이처럼 명확한 소비 둔화 리스크 속에서 투자자와 정책당국은 어떤 방향성을 고민해야 할까? 우선 투자 관점에서 보자면, 전통적인 소비주 전반에 대한 낙관은 재조정될 필요가 있다. 팬데믹 이후 소비 섹터를 이끌었던 대형 리테일 기업이나 여행·레저 관련주는 이제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필수소비재나 저가 브랜드 중심의 유통 기업, 신용 소비 증가에 따라 성장하는 파이낸싱 플랫폼 기업 등이 방어적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고물가와 고금리의 장기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고배당주와 현금흐름이 안정된 산업에 대한 선호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책 측면에서는, 미국 연준이 인플레이션 제어 이후 점진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하더라도, 이미 소진된 소비 심리를 단기간에 되살리기는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재정 정책이 보다 직접적인 소비 촉진 수단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보조금 재개, 학자금 대출 상환 조정, 소비세 감면 등은 단기 소비 부양에 일정한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재정 적자가 이미 역사적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정책 여력 역시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득 구조의 재정비와 소비 신뢰 회복이다. 이는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는 과제지만, 중산층의 실질 소득을 복원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중장기적 전략 없이는 미국 소비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수요 사이드 리스크는 일시적 하락이 아닌, 경제 체력 자체를 재정의하는 근본적 위험 요소로 이해되어야 한다.

 

미국 경제는 팬데믹 이후 저축과 소비의 반작용 속에서 일종의 기이한 회복을 경험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회복의 연료가 고갈되고, 수요의 뿌리 자체가 흔들리는 시점이다. 더 이상 통계상 소비 지출의 크기만으로 경제의 건강을 판단할 수 없다. 팬데믹 저축의 소멸은 곧 소비 심리의 현실적 한계와 마주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향후 글로벌 경기 흐름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투자가와 정책당국 모두, 수요 측면의 구조적 리스크를 다시 들여다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