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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두는 단순한 곡물이 아니다. 이는 단백질과 기름을 동시에 제공하는 고영양 작물이자, 가축 사료와 식품 원료, 바이오 연료의 기초 재료로 쓰인다. 미국과 중국 모두 대두를 ‘전략물자’로 간주하고 있으며, 특히 중국은 전 세계 대두 수입의 6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이 곡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대두, 식량이자 전략무기
중국의 돼지고기 소비량은 세계 1위이며, 이는 곧 대두 수요와 직결된다. 미국은 세계 최대 대두 수출국 중 하나로서, 지난 수십 년간 중국에 막대한 양의 대두를 공급해왔다. 그러나 미중 무역 갈등이 격화되면서 대두는 양국 간의 갈등 구조 속 교환 카드로 떠올랐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조치에 대응해 중국은 미국산 대두에 보복성 관세를 부과했다. 이는 미국 농민들에게 큰 충격이었고, 미중 관계의 민감한 교착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이후 대두는 단순한 경제 교역 품목이 아니라 지정학적 상징이자 협상의 무기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피해와 농업 보조금 전략
중국이 미국산 대두 수입을 급감시키자, 미국 농민들은 즉각적인 타격을 입었다. 특히 중서부 지역의 대두 생산자들은 수확물의 판로를 잃어 가격 하락과 재고 증가에 직면했다. 미국 농무부는 이 피해를 줄이기 위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농업 보조금 패키지를 발표했으며, 정치적으로는 농민들의 이탈을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역 전쟁의 여파는 현장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농기계 산업과 운송, 저장 인프라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았고, 많은 농민들은 대두 대신 옥수수나 밀로 작목을 전환하거나, 새로운 수출 시장(예: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대두는 단기간에 대체가 어렵고, 중국 시장의 규모만큼 큰 수요처는 전무하다는 점에서 미국 농업의 구조적 리스크가 드러났다.
중국의 자급자족 전략과 브라질 카드
중국은 무역전쟁 이후 식량 안보라는 개념을 더욱 강조하게 됐다. 대두를 포함한 주요 곡물의 국산화 및 수입 다변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대두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동북 3성(흑룡강성 등)에 대두 재배를 확대하고, 유전자변형작물(GMO) 도입을 점진적으로 허용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중국은 브라질과의 농업 협력을 강화했다. 브라질은 미국과 함께 세계 최대 대두 수출국이며, 중국은 브라질산 대두 수입을 확대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췄다. 브라질-중국 간의 대두 공급선은 미중 무역 전쟁의 최대 수혜 구조 중 하나로, 이 과정에서 브라질의 아마존 삼림 파괴와 환경 이슈도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중국의 자급전략은 단기적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과제로 남아 있다. 대규모 농기계화, GMO 기술, 유통 인프라 등의 격차는 여전히 미국과 비교해 크며, 자연재해와 기후 불안정성도 변수가 된다. 자급률을 높이는 것은 전략적으로 의미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수입 다변화가 병행되는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
대두 전쟁은 단순한 수출입 분쟁이 아니라, 미래 식량 안보를 둘러싼 지정학적 전선이다. 미중 양국은 서로의 취약한 고리를 파고들고 있으며, 대두는 그중에서도 민감한 부분이다. 미국은 기술과 장비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지만, 중국은 수요와 구매력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기후 변화와 전염병(예: 아프리카돼지열병)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식량 공급망의 안정성은 더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앞으로는 대두뿐 아니라 밀, 옥수수, 쌀 등 핵심 곡물에서도 비슷한 전략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중국은 해외 농장 소유라는 방식으로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미 등에 농업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으며, 미국은 인도, 베트남 등과의 협력을 강화해 새로운 공급선을 찾고 있다.
결국 대두는 오늘날의 교역품이자 내일의 전략 자산이다. 식량 안보와 무역 정책, 지정학이 얽힌 복합적 퍼즐 속에서 미중 간 농업 전쟁은 새로운 냉전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