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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방 예산은 전 세계에서 단연 최고 수준이다. 최근 몇 년간 중국과의 군사적 긴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과의 방위 공조 강화 등의 이유로 미국의 군비 지출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와 공화당 모두 국방 강화의 필요성에 일정 부분 동의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 안보라는 명분 아래 비교적 초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경제적 질문이 하나 제기된다. 과연 국방 예산 확대는 경제를 성장시키는가, 아니면 국가 재정에 부담을 안기는가? 이번 글에서는 이 질문을 중심으로, 군비 경쟁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1. 군비 지출은 곧 케인스식 경기 부양책인가?
전통적인 거시경제 이론에서 정부 지출은 경제를 부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대공황 이후 케인스주의는 정부 지출 확대가 민간 수요 부족을 메운다고 주장했는데, 그 대표적 예로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미국 군비 지출이 자주 언급된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국방 예산 확대는 단기적으로 GDP 증가에 기여할 수 있다. 방위산업체에 자금이 투입되면 생산과 고용이 늘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소비와 세수도 증가하게 된다. 특히 항공기, 미사일, 사이버 보안 등 첨단 산업에 대한 투자는 기술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속성이다. 군비 지출은 일회성 성격이 강하고, 소비재 시장처럼 민간에 직접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해, 군사 장비는 경제의 다른 분야로 파급되기 어려운 폐쇄형 투자라는 지적도 있다.
2. 사회 인프라와 복지에 쓰였어야 할 돈
경제학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기회비용이다. 국방 예산이 증가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분야—예를 들어 교육, 의료, 주택, 기후 대응 등—에 쓰일 수 있는 자원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미국 내에서는 여전히 대학 학자금 부채, 의료보험 미가입, 노후 인프라 문제 등 시급한 사회 문제들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연방정부가 수천억 달러를 무기 개발과 해외 주둔군 유지에 쏟아붓는다는 점에서, 국내 민생 분야의 기회비용이 무시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한 군사 기술과 달리, 사회 인프라 투자나 복지 지출은 보다 넓은 계층에 직접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장기적으로는 생산성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 단기적인 GDP 성장을 넘어서, 어떤 지출이 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3. 재정적자와 국가 채무, 군비는 ‘재정폭탄’이 될 수 있다
2020년 팬데믹 이후 미국의 재정적자와 국가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25년 기준 미국의 국가 부채는 34조 달러를 넘어서고 있으며, 국방 예산은 매년 전체 예산의 10~15%를 차지하고 있다.
단순히 국방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할 수도 있지만, 이미 고정화된 방위비 지출이 재정 건전성에 구조적인 압박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국방 예산은 대개 수년간 계약이 묶여 있는 고정비 성격을 가지므로, 급격히 줄이기도 어렵다.
이로 인해 미국은 점점 더 많은 예산을 국채 발행으로 충당하게 되며, 이는 장기적으로 금리 상승 압력과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국가 전체가 이자를 갚는 데 더 많은 세금을 쓰게 되면서, 경제 전반의 유연성과 대응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군비 경쟁은 글로벌 경제에도 불확실성 비용을 유발한다
미국의 군비 확장은 종종 중국, 러시아, 이란 등 주요 경쟁국의 대응을 유도하게 된다. 이른바 안보 딜레마 현상이다. 어느 한 국가가 안보를 위해 군사력을 키우면, 다른 국가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게 되어 결국 모두가 더 불안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는 국제 무역과 자본 흐름에도 영향을 준다.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면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기업들은 투자에 소극적이 되며, 소비 심리도 위축된다. 실제로 군사 충돌 가능성이 커질수록, 글로벌 증시는 흔들리고 안전자산 선호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즉, 군비 확장은 국내 경제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도 부정적인 파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다. 이 점에서 군사적 해법보다는 외교적 안정과 국제 협력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강한 국방과 지속 가능한 경제는 병행 가능할까?
국방은 분명 국가의 안전을 위한 필수 요소다. 하지만 국방 예산의 지속적인 확대가 곧 경제 성장이라는 등식은 위험할 수 있다. 오히려 과도한 군비 지출은 재정 불균형, 사회적 기회비용, 국제 경제 불안정성 등 여러 부작용을 수반한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균형 있는 지출이다. 진정한 국력은 군사력뿐 아니라, 국민의 삶의 질, 사회의 포용성, 경제의 혁신성에서도 비롯된다. 국방과 경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조율의 문제다. 이제는 얼마나 더 많이 지출할 것인가 보다는, 어디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투자할 것인가를 고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