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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by Ooring 2025. 4. 7.

조선의 군사는 초기 오위 체계로 편성되어 있다가 이후 지역 거점을 중심으로 방어 체계를 구축한 진관제와 이를 보완하는 제승방략을 핵심으로 하였다. 이러한 전략은 임진왜란을 거치며 급작스런 외침에 맞서기 어렵다는 점이 부각되어 훈련도감을 시작으로 오군영의 중앙군을 두고 각도에 속오군을 두어 지방을 방어하는 형태로 변화되었고,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되었던 비변사가 상설화 되면서 의정부를 제치고 실질적인 정치 의결 기구로 변화하였다. 조선군의 병력은 초기 부터 병역을 지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번을 서는 형태로 정착되었으나 양반들의 병역 기피가 극심하였고 이에 영향을 받아 양인들도 되도록 군포를 대납하고 병역을 대신하고자 하는 풍조가 일어 조선 후기 이후 실제 병역에 복무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양민이나 천인들이 많아 속오군은 천예군이라고 멸시 받을 지경이었다. 이는 조선 말 여러 위기에서 제대로 된 군사적 대응을 할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조선의 지배층이었던 양반은 지역에 할거하며 토지를 소유한 지주로서 농업을 우선하는 경제 정책을 펼쳤다. 이에 따라 조선의 경제는 화폐보다 현물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고 상당수의 교환이 상호간의 호의에 의해 선물을 주고받는 호혜경제의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국가의 조세 수취와 분배, 상품의 교환 등이 혼재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선 전기 및 중기의 상업은 금난전권이 주어진 독점적 상인들이 주축이 되어 이루어졌고 보다 자유로운 상업활동은 금난전권이 폐지된 신해통공 이후에 이루어졌다. 화폐의 원활한 보급은 조선 후기 일본으로부터 막대한 구리를 수입한 뒤에야 가능하였다. 후기에 들어 민간이 운영하는 수공업이 발달하여 오늘날에도 지역 명산물로 꼽히는 한산모시나, 전주시의 부채와 같은 물품들이 등장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전국적인 상업망이 발전하면서 이익을 목적으로한 상업 활동이 활발해졌고 조선 후기 등장한 오일장과 같은 정규 시장은 오늘날에도 전통 시장의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